경쟁으로서의 스포츠
1) 체제 경쟁과 스포츠
서구 스포츠가 점차 확산되어 세계인의 공통언어가 되면서 스포츠에서의 승 패를 집단 간의 우열을 나누는 기준으로 삼고자 하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사실 이는 경쟁적 신체활동인 스포츠의 본질과도 연결되는 것으로서 근대 스포츠의 초창기부터 존재했던 현상이다. 그런데 19세기말 프로 스포츠의 등장은 이런 경향을 더욱 강화시켰다. 프로 스포츠의 출범은 여가를 활용하는 수단으로 스 포츠 경기의 관람을 선택했던 사람들의 증가와 일정한 급료를 주고서라도 우 수선수를 영입하여 경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자기 공장, 지역, 교구의 우월성을 과시하고자 했던 욕망이 상호적으로 영향을 미친 결과였다. 그리고 이처럼 프로 스포츠가 확산되면서 스포츠를 개인적 여가활용의 수단으로 삼아 즐거움을 위해 스포츠를 했던 초기 스포츠의 전통은 점차 약화되고, 타 집단과의 경쟁 수단으로 스포츠를 보는 관점이 점점 우세해졌다.
원래 스포츠를 통해 경쟁을 벌였던 주체는 공장이나 지역이었다. 하지만 스 포츠의 세계화와 함께 국가가중요한 경쟁 주체로 부상하게 된다. 1936년의 베를린 올림픽을 아리안 민족의 우수성을 과시할 장으로 삼고자 했던 히틀러의 시도는 이처럼 스포츠 경쟁의 주체가 국가적 차원으로 상승했음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냉전체제는 스포츠를 통한 국가 간 경쟁체제를 더욱 강화시켰다. 냉전체제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뒤따라 구사회주의권이 붕괴한 1990년대 초까지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 사이에 존재했던 대립구도를 가리킨 다. 여기서 냉전이란 전쟁을 의미하는 열전에 대비되는 용어로, 한국전쟁이나 베트남 전쟁 같은 소규모의 국지적인 대리전을 제외하면 직접적인 대규모의 군사적 대립은 회피하고 서로의 체제 우월성을 과시하는 다른 방식의 경쟁을 지속했다는 의미이다.
냉전체제하에서 각국은 올림픽과 월드컵을 비롯한 다양한 국제대회에서 상 대 진영 국가에 비해 더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노력을 쏟아부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더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던 쪽은 과거 상대적으로 후진국이었던 사 회주의 국가들이었다. 국가 주도의 스포츠 기구를 설치하고 스포츠 과학을 적 극 활용했으며, 심지어 국가가 주도해 약물을 사용하면서까지 선수들의 경기 력을 향상했던 동독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올림픽을 비롯한 주요 국 제대회가 열릴 때마다 동독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의 대표선수들이 경기력을 향상하기 위해 약물을 복용했다는 의심이 끊이지 않았다.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성적이 돈과 직결되는 프로 스포츠에서 상대적으로 약 물 사용이 잦았다면, 프로 스포츠가 존재하지 않았던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체 제경쟁을 위해 아마추어 선수인 국가대표선수들에게 약물이 투여되었다는 것이다.
스포츠를 통한 체제경쟁의 극단적 사례로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비 난하며 미국과 서독, 한국, 일본 등 66개국이 올림픽에 불참한 1980년 모스크 바 올림픽을 들 수 있다. 이들 나라가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콧한 표면적 이 유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소련의 부당한 개입이었다. 하지만 이를 단순하게 정의와 불의 또는 선과 악의 대결로 볼 수는 없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 사회주의 블록을 유지하려는 배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이를 비판하며 올림픽 불참을 주도한 미국 역시 베트남과 남미의 여러 나라에서 사회주의 블록의 확장을 저지하기 위해 비도덕적인 정권을 지원한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 주도의 모스크바 올림픽 불참과 그에 대한 보복으로 소련이 주도한 1984년 LA 올림픽 불참은 상대 체제의 정당성을 훼손하여 경쟁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욕망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경기에서 직접 승리하는 것이 일차적인 방법이지만 경기를 아예 거부함으로써 상대가 경기를 함께할 만한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것도 체제경쟁을 위해 택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2) 저항으로서의 스포츠
스포츠가 경쟁의 도구로 자리 잡히면서 스포츠는 또한 저항의 수단으로 부 상하기도 했다. 즉, 스포츠는 권력이나 경제력, 위신의 면에서 사회의 주류세 력으로부터 배제당했던 사회적 소수집단이나 약소국이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 꺼낼 수단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과거의 식민지 국가들이 주를 이루는 약소국들이 저항의 수단으로 스포츠를 사용한 사례로는 여러 차례의 올림픽과 국제대회 보이콧을 들 수 있다. 이를 테 면 남아프리카 공화국(남아공)의 흑인 탄압에 항의하여 남아공과의 경기를 거 부했던 것이 그 사례이다. 남아공은 1964년의 도쿄 올림픽 참여를 불허당했는 데, 그 이유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이 남아공의 참여가 허용된다면 올림픽 대 회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결국 남아공은 1970년 이후 인종차별 정책이 폐기될 때까지 올림픽 대회에서 축출되고 말았다.
소수집단이 저항의 수단으로 스포츠를 사용한 대표적 사례로는 1968년 멕 시코시티 올림픽 남자 육상 200미터 경주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차지한 미국의 흑인 선수 토미 스미스(Tommie Smith)와 존 카를로스(John Carlos)가 시상식에서 국가가 연주될 때 고개를 숙이고 검은 장갑을 낀 손을 들어 올린 이른바 블랙 파워 설루트를 한 것을 꼽을 수 있다. 이런 저항은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부당행위가 일어날 때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흑인과 마찬가지로 역시 소수집단인 여성은 스포츠가 지닌 남성 중심적 성 격 때문에 오랫동안 스포츠의 세계에서 배제되어 있었다. 기원전 396년에 4두 전차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시니스카(Cymisca)와 같은 여성이나 중세시대에 마상창시합을 했던 여성들이 있기는 했지만,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스포츠에서 여성의 역할은 대부분 관객의 역할로 국한되어 있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스포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금녀의 대회였던 1967년 보스턴 마라톤에 이름을 이니셜로 처리하여 성별을 모호하게 한 후 참여했다가 중도에 제지당했던 캐스린 스위처(Kathrine Switzer)는 스포츠에서 여성의 차별에 저항했던 대표적 사례이다. 스포츠에서의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들의 요구는 남녀차별의 현실을 개선하고 평등을 실 현하고자 하는 여성들의 저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