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아득한 옛날이 되어 버린 1960년대의 히트곡 《과거는 흘러갔다》에 서 대중음악 가수 여운은 “아무리 뉘우쳐도 과거는 흘러갔다”라고 노래한 바 있다.
사실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 한평생 크게 후회할 일 없이 살았다고 인생을 회고하는 사람일지라도 어찌 자잘한 후횟거리조차 없을 것인가?
그래서 그 후회의 순간 우리는여운의 노랫말처럼“즐거웠던 그 날이 올 수 있다면 아련 히 떠오르는 과거로 돌아가서 지금의 내 심정을 전”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 보니 우리는 그저 후회할 수 있을 뿐이다.
공상과학 영화에서 과거로 돌아가 그때 저질렀던 잘못을 바로잡음으로써 현재와 나아가 미래 를 변화시키는 이른바 타임머신이 단골 소재가 되는 것도 이처럼 과거와 관련 해서는 후회밖에할 수없는 인간의 숙명때문일 것이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망각의 능력이 신이 인간에게 준 소중한 선물이라고 하 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거는 언제나 후횟거리가 존재하는 영역이라면 후횟거리로 가득 찬 과거에 얽매여 언제까지나 고통 몸부림치지 않고 다시 현재 를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망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망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시간은 언제나‘약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 는 것은 분명하지만 때로는 모르는 것이‘약이 되기도 하므로,
그렇다면 우리는 왜 역사를 배우는 것일까? 후회스러운 과거를 잊는 것이 현재를살아갈 수있게해 주는힘이라면 역사공부를 통해굳이그과거를다 시 되새기는 것에는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행복한 기억이라고 해도 다시 되풀이할 수없는데, 때로는 결코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끔찍한 기억 을 되살리기도 하는 역사 공부는 왜 필요한 것일까?
- 역사를 공부해야하는 이유
고전적인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캐(E. H. Cam)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그런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대화라고? 그 렇다면 현재는 이미 사라진 고리타분한 과거와 왜 대화를 해야 할까?
첫 번째 이유는 인간이 다른 생물과 달리 스스로 진화를 이루어 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능력은 인간과 다른 생물을 구분 짓는 핵심 속성이기도 하다.
주지하듯이 모든 생물은 주변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이 적응을 제대로 이루었을 때 그 종은 번성하며 적응에 실패하면 사멸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부분 이미 형성된 본능에 따라 환경에 적응하고 그 적응 능력이 당대에국한되는여타의 종과 달리인간은세대를걸쳐가며이 적응 능력을 축적할수 있는 존재이다.
다시 말해 다른 생물이 비록 진화에 의한 도움을 받더라도원 칙적으로 본능에 의존해 환경에 적응한다면, 인간은 환경에 대한 적응 경험을후대에 물려주는 방식을 통해 축적함으로써 시간이 지날수록 적응 능력을 높여 갈 수 있는 존재이다.
다른 종보다 높은 인간의 지능이 그런 축적의 일차 적 기반이었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인간은 고도의 언어능력을 발전시켜 기 억의 전승을 이루어 냈으며, 나아가 그것을 기록할 수 있는 문자까지 발명함으 로써 전승의 가능성을 극대화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희미해지는 기억이지만 문자는 기억의 희미해짐을막고 기억을 절대화했다. 역사는 이처럼 기억 에 의해 축적되는 적응 능력의 전승과정을 주먹구구식 형태가 아니라 체계적인 형태로 정리한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이를 통해 과거를 기억하고, 선조들이 축적한적응 능력을 물려받을 뿐아니라 더발전시킬 수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공 부함으로써 우리는 먼저 과거에 어떤 상황이 있었고 그에 대해 선조들이 어떻게 대응하였으며, 이를 통해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만일 과 거선조들의대응결과가 충분히만족스러운것이었다면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과거 선조들이 했던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대응함으로써 과거의 만족 스러운 결과를 복제할 수있을 것이다. 반면, 그대응이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 를 낳았다면 그 불만족스러운 결과를 낳았던 원인을 따져 보고 만족스러운 결 과를 얻기 위해 과거에 했던 대응을 부분적으로 수정하거나 나아가 과거의 대d 응을 폐기하고 완전히 새로운 대응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역사공부는한사회의구성원전체또는나아가전 인류차원에서시행착 오를 통해 오류를 교정해가는과정에비견될 수있다.구리하카의 말처럼 역사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은 어떤 대응 하기 어려운 상황에 부딪쳤을 때, 우리가 과거 속에서 유사한 상황을 찾아보고 과거의 대응방식의 적합성을 현재의 상황에 비춰 끊임없이 따져 본다는 의미 로 해석할 수 있다. 즉, 현재는 과거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제기하며 과거는그에 대해 답변을 제공해 준다. 그 답변이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다면 또 다른 과거를 탐색하고 그에 대해 유사한 질문을 제기한다.
만족스러운 답변을 찾을때까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질문은 계속된다. 물론 현재 우리가 부딪치고 있는 상황과 완벽하게 똑같은 과거의 상황을 찾b 는 것은 불가능하다. 흔히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복이 똑같은 형태로 이루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당장 장마와 태풍, 폭설 등과 같이 매년 반복되는 자연재해에 대해 생각해 보자. 어느 해나 장마철은 있고 태풍이 불어오며 폭설도 내리지만 해마다 강수량이 다르고 태풍의 진로 도 다르며 바람의 세기에도 차이가 있다. 강력한 태풍이 북상할 때마다 기상청에서는 과거의 유사했던 태풍과 비교해 주지만 정작 정확히 똑같은 태풍이 불 어오는 사례는 한 번도 없다.
덧붙여 인간에 의한 변화도 무시할 수 없다. 인간은 자연환경을 끊임없이 변 화시켜 인위적인 환경으로 만들어 간다. 숲을 없애 농토를 만들고 바다를 메워 도시를 만든다.
아직은 부분적이지만 우주정거장처럼 심지어 텅 빈 허공에 인간이 정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이처럼 인간의 개입 에 의해 생긴 변화가 자연재해의 영향력을 굴절시키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를 테면 똑같은 양의 비가 내리더라도 울창한 숲이 유지되고 있는 상태에서 내린 비와 산의 나무가 사라진 상태에서 내린 비는 그 피해의 정도가 다르다. 마찬 가지로 포장되지 않은 도로에 내린 비와 포장된 도로에 내린 비가 미치는 영 향에도 차이가 있다. 결국 인간의 개입에 의해 빗어진 환경의 변화가 과거와 똑같은 상황의 존재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된다. 그래서 역사 는 과거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특정 관점에 입각해 이를 해석함으로써 세부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상황을 찾고자 한다.
역사를 공부하는 두 번째 이유는 인간이 과거를 잊지 않고 적응 능력을 축 적해 가는 존재라는 점과 연관이 있다. 즉,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 그리고 나 아가 선조들의 행위의 결과로 존재한다. 따라서 현재의 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나를 만든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에 내가 했 던 모든 행위가 축적된 결과가 현재의 나이기 때문이다.
이는 단지 개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한 사회 나아가서는 인류 전체 의 현재가 모두 과거가 축적된 산물이다. 우리는 흔히 사회구조라는 말을 하는 데, 사회구조란 한 사회의 조직화된 틀을 가리키는 것이다. 모든 개인은 이 구 조 속에서 태어나 구조에 적응하도록 훈련받고 그 과정에서 구조를 변화시키 는 데 기여하며, 이런 적응의 과정을 사회화라고 부른다. 즉, 사회화란 한 개인 이 특정 사회에 잘 적응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훈련받는 과정을 가리킨다. 하 지만 이 사회화의 과정이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세대가 지나면서 사 회구조는 변화를 겪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 사회구조가 과거 세대의 행위의 결과가 축적되어 형성된 것 이라는 점이다. 즉, 우리는 언제 어떤 과정에 의해 형성된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회구조에 적응하도록 훈련받고 결국 그에 적응하는 존재이다. 한국 사회에 태어난 사람이 한국어를 배우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 게 되듯이 사회구조에 적응하는 것은 그의 생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 인이다. 하지만 이런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적응하도록 강요받 는 사회구조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요인들의 작용에 의해 어떻게 형성되었는 지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역사 공부는 현재의 나를 만든 과거를 살펴봄으로써 현재의 나를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재가 과거의 산물이듯 미래는 현재의 산물이다. 지금 현재가 완벽한 상태이고 우리 가 천국에 살고 있다면 우리는 현재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데 힘을 쏟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어느 사회나 갖가지 사회문제를 안고 있듯이 완벽한 상태의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회를 변화시켜 좀 더 나은 사회로 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역사 공부는 현재 상태를 만드는 데 누가 또는 무엇이 어떤 역할을 했고, 그 결과 현재 어떤 문제를 지니게 되었는지 알려 준다. 이를테면 현재 우리 사회 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빈부격차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자. 빈부격차가 만들 어지는 원천에는 게으른 사람과 부지런한 사람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똑같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더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부유하고 어떤 사람은 가난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사 회의 상황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듯이 거기에는 특정 개인이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느냐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른바 금수저, 은수저 같은 '수저계급 론’에서 얘기하듯이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더 라도 부자 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난한 집안 출신의 사람이 부자가 되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사회가 부의 대물림을 큰 폭으로 허용해 주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부가 자녀의 부로 그대로 이전되다 보니 태어날 때부터 이미 거의 극 복하기 어려운 차이를 감수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부 의 대물림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제도는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누군가의 주 도적인 역할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이 제도를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을 그대로 유지 하면 된다. 반면, 이 제도가 불합리하고 그래서 개혁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개혁하기 위해 역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즉, 현 재의 제도가 만들어질 때 어떤 과정을 거쳤고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 떤 역할을 하여 현 제도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이 제도를 변화시키려 할 때 어떤 식으로 행위해야 하는지에 대해 조언을 얻을 수 있다.
나아가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사회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도 역사의 도움을 받아 구축할 수 있다. 왕정과 독재정, 귀족정 등 소수가 주도 하는 정치에서 다수가 참여하는 민주정으로의 변화가 이루어졌던 것은 이처럼 역사를 공부하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꾼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현재 상 태의 민주정이 지닌 한계를 넘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많은 노력이 펼쳐 지고 있다.
『포이에르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카를 마르크스(Karl Marx)는 "지금까지의 철학자들은 역사를 이런저런 방식으로 해석해 왔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 을 변화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항상 염 두에 두어야 할 것도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어떤 미래를 만들고 싶어 하는가?
역사를 공부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바로 그 미래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정립하 는 것이다. 결국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단지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 아보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역사 공부는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기도 하다.
- 역사의 주요 영역
통칭하여 역사라고 하지만 역사에도 다양한 영역이 존재한다. 흔히 말하는 정치사, 경제사, 사회사, 문화사, 일상사 등의 구분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영 역은 분야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관점의 차이이기도 하다. 즉, 어떤 영역에 초 점을 맞춘다는 것은 그 영역이 우리의 삶에 가장 큰 또는 적어도 중요한 영향 을 미치는 영역이라는 판단을 함축하는 것이다.
정치사는 많은 사람에게 가장 친숙한 역사의 영역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 운 국사 또는 세계사가 대부분 정치사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치사는 정치적 사건, 관념, 운동, 정부조직, 유권자, 정당, 그리고 지도자 등의 변화에 대해 다룬다. 즉, 기본적으로 권력의 조직과 작용에 대해 연구하는 것 이다.
경제사는 경제가 변화해 온 과정을 연구하는 분야로, 인간의 경제적 생존과 정의 형태, 흐름 등을 연구한다. 경제사는 인간의 삶에서 정치권력의 변화가 미치는 영향은 제한되어 있으며 실제 경제생활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출현했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주의의 역사해석에서는 생산 양식으로 표현되는 경제 영역의 변화가 사회변화의 핵심 요인이며, 정치를 비 롯한 여타의 영역은 모두 이 경제의 변화에 따라가는 영역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정치사와 경제사를 구분한다고 해서 두 영역이 전혀 별개의 영역인 것 은 아니다. 보수적 입장을 지닌 인사들이 흔히 경제 영역에 정치 논리를 개입 시키지 말라고 주장하며 경제 영역은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에 의해 마치 자 율적으로 움직여 가는 영역인 것처럼 말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실제로 경제 영역이 정치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웠던 적은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폭군이나 독재자의 개인적 이득을 위한 착취는 논외로 하더라도 이를테면 조 세정책의 변화 같은 것은 항상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또는 정치적 행위의 극단적 형태인 전쟁과 같은 것도 경제의 작용에 큰 영향을 미친다.
•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
영국의 고전학파 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제안한 경제 이론으로,
1776년 스미스의 저서 「국부론」에 소개되었다. 모든 경제 주체가 건전한 사회제도 아래서 경쟁하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경제 질서를 가져오고 부와 번영을 이루 게 된다는 이론이다. 스미스의 사상은 자유방임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의 토대가 되었고, 많은 학자에 의해 발전되어 경제적 균형이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신념을 낳았다.
출처: 다음백과, https://100 daum.net/encyclopedia/ view/60963709a, 2021년 2월 9일
실상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자유시장 경제는 벌거벗은
약육강식의 싸움터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처럼 극소수의 승자가 그 사회가 생산한 대부분의 이득을 독점하 는 가운데 다수의 약자가 피폐한 삶을 영위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한다면 그 상황을 그대로 두고 불 정치 지도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부장에게 더 많은 세 금을 물리는 누진세 제도나 경제적 약자에게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해 주기 위해 마련된 복지제도 등은 자유시장 경제의 폐해를 완화하려는 대표적 장치 들이라 할 수 있다. 근자에 우리 사회를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논란이 되고 있 는 이른바 기본소득도 그런 사례의 하나이다. 기본소득은 로봇과 인공지능의 발달이 고도화되는 시점에서 노동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제공해 줌으로써 한편으로는 그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다른 한편으로 는 체제의 지속성을 유지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기본소득에 대한 논란 자체는 주로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것이지만 기본소득이 도입되었을 때 직접적 인 영향을 받는 영역은 바로 경제 부문이다.
마찬가지로 정치 영역도 경제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전제군주제로부터 민주제로의 역사적 대전환을 이루는 데 계기가 되었던 1789년의 프랑스 혁명 이 '빵을 달라"는 민중의 행진으로부터 촉발되었듯이 왕조의 흥망이나 개별 군주의 운명을 좌우할 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도 경제 상황이다. 당장 민주 주의가 자리 잡히고 복지제도가 정착된 현대사회에서도 정제 상황은 정권의 지속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그림에도 불구하고 정치사와 경제사를 군이 구분하는 이유는 전통적인 정치 사가 여타 요인들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무시한 채 권력의 이동에만 초점을 맞 취 왔던 것에 대한 반성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사회사나 문화사, 또는 좀 더 세분화되어 여성사 같은 분야가 성립된 배경도 기본적으로는 유사한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다시 말해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정치권력의 변화가 다수 사람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가정했지만 실제 역사의 연구 과정에서 과연 정치권력의 변화가 보통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 역사에서 고려 왕조가 무너지고 조선 왕조가 들어섰을 때 주요 관직을 맡았던 소수의 사람과 그 주변 사 람을 제외한 다수의 일반인에게 그런 정치권력의 교체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 쳤을까? 물론 고려 시대가 불교 중심이었고 조선 시대가 유교 중심이었듯이 고려와 조선은 통치 이념이 달랐고 그로 인해 다양한 영역에서 여러 변화가 일어난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로 인한 변화가 이를테면 시장이 좀 더 활성 화되었다든지 외국과의 교역이 좀 더 늘어난 것 또는 농사 기술의 개선 같은 것에 비해 얼마나 더 깊은 영향을 미쳤는지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정치의 변화와 다른 영역의 변화가 지닌 상대적 영향력의 차이에 대한 논란에 서 정치사 외의 다른 영역에 대한 관심이 발전하게 되었다.
체육사는 이처럼 정치사 중심의 역사가 비판받으면서 나타난 분야의 하나이 다. 체육사는 그 초점에 따라 사회사나 문화사, 일상사, 여성사 등과 모두 연관 될 수 있지만 또한 정치사나 경제사와도 연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체육에 소비하는 지출액이 경제 상황의 변화에 따라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가 라든지 역으로 이 지출액의 변화에 따라 경제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에 초점 을 맞춘다면, 체육사는 경제사와 연결된다. 또는 체육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누구였고 그들의 독점적 향유권을 보장해 주기 위해 어떤 제도가 존재했는지 를 연구한다면, 체육사는 정치사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여성이 체육에서 어떻게 배제되었고 이 배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어떤 제도가 형성되 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면, 체육사는 여성사와 연결된다. 또는 사람들의 여가 생활이 어떻게 바뀌어 왔고 그 과정에서 체육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본다 면, 체육사는 일상사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체육사는 정치, 경 제, 문화 등 다양한 영역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체육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를 다루는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역으로 체육의 변화가 다른 영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도 체육사의 영역에 포함된다.
한편 다른 역사의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체육사에도 다양한 하위 영역이 존재한다. 흔히 체육의 영역을 체육활동을 하는 주체에 따라 전문체육과 학교 체육, 생활체육으로 구분하듯이 이들 하위 영역의 역사가 가능하다. 이제까지 의 체육사는 주로 전문체육과 학교체육에 초점을 맞춰 왔으나, 문화사나 일상사의 시각이 체육사에도 더 폭넓게 받아들여진다면 생활체육의 역사가 앞으로 각광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 체육사를 공부하는 의미는?
1) 운동, 체육, 스포츠
체육의 역사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체육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일상적인 용법에서 보면 체육이라는 말과 유사한 의미를 지니고 때로 혼용되기도 하는 용어가 몇 개 있다.
운동과 스포츠 같은 용어가 대표적 국어사전에 보면 운동은 I 건강의 유지나 증진을 목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일, 사회 안에서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조직적인 활동, ③ 일정한 규칙 에 따라 신체의 기술과 기량을 겨루어 승부를 가리는 육체 활동, ④ 물체가 시 간의 흐름에 따라 그 공간적 위치를 바꾸는 작용이나 현상, ⑤ 시간의 경과에 따른 물질적 존재의 모든 변화나 발전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닌 용어로 정의되 어 있다. 이 중에서 O, ③이 체육이나 스포츠와 연결되는 의미이다.
반면, 체육은 인간의 신체활동을 통하여 근육을 단련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완성된 인적을 만들려는 교육적 작용으로 정의된다. 즉, 체육이란 개인적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여 신체활동의 잠재적 가치를 최대한 발휘시킴으로써 참된 인간을 형성하는 것으로 기본적으로 교육의 한 영역으로 분류된다. 다시 말해 인간의 지적 능력을 고양시키기 위해 마련된 과목이 국어와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의 과목이라면 음악과 미술 등은 인간의 정서를 함양하기 위해 마련된 과목이고, 체육은 신체적 능력을 발달시키기 위해 마련된 과목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스포츠는 미리 정해진 규칙에 따라 단체나 개인이 벌이는 조직 적인 경쟁을 가리킨다. 따라서 스포츠가 되기 위해서는 미리 정해진 규칙이 있 어야 하며, 그 규칙을 관장하는 조직이나 기구가 존재해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세 용어 중에서 운동이 가장 넓은 개념이고, 체육은 교육적 목적으로 운동을 이용하는 것이며, 스포츠는 특정한 규칙에 입각해 운동을 형 식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운동이 동물로서 인간이 나타난 이래 항상 존 재했던 것이라면 체육과 스포츠는 근대 이후의 산물이다. 고대 그리스의 학교 에서도 체계적인 체육교육이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초등학교부터 중등학교와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이 마련되고 모든 아동에 대한 의 무교육이 실시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전 세계 어디 에서나 적용되는 공통의 규칙을 관장하는 스포츠 기구가 만들어지고, 이들이 제정한 규칙에 따라 조직적인 경쟁이 벌어진 것도 역시 18세기 이후의 일이다.
따라서 우리가 체육사를 좁게 해석하면 체육사는 학교에서의 체육교육이 변 화되어 온 역사를 가리킨다. 하지만 넓은 의미의 체육사는 단지 학교에서의 체 육교육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의 역사 전반을 포괄한다. 그리고 이들 운 동 중에서도 신체의 모든 움직임이 아니라 전 세계 또는 한 나라 전반을 포괄 하는 규칙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규정된 규칙에 입각해 개인이나 집단이 벌이는 경쟁운동이 체육사의 대상이 된다.
2) 한국체육사 공부의 의미
한국체육사를 공부하는 의미도 기본적으로는 역사를 공부하는 의미와 맞을 아 있다. 즉, 현재의 우리 체육이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는지를 합 구합으로써 현재를 좀 더 잘 이해하고 나아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 체육의 역사 속에는 서구 체육의 역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특성이 많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우리 체육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역사 공부의 중요성이 더욱 큰 편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우리 체육계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목 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학생 운동선수의 학력 저하, 끊이지 않는 체 육계의 폭력과 성폭력, 나아가 좀 더 일반적으로는 소수의 선수를 배려하다 보 니 다수의 사람이 운동을 즐길 기회를 제대로 확보할 수 없다는 점 등이 대표 적이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점들은 어디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일까?
일반적인 수준에서 말하자면 현재 우리 체육계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점의 기반은 19세기 말 근대 체육의 도입 과정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비교적 무 를 강조했던 고려시대까지와 달리 철저하게 문()을 중시하고 무를 약화시 켰던 조선시대 500여 년을 지나면서 우리 사회에서는 지적인 능력을 함양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신체적 능력을 발달시키는 것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는 관행이 발전했다. 그러다 개화기에 이르러 왕조가 쇠퇴해 가는 가운데 부국강 병책을 도모하면서 신체의 발달을 강조하는 움직임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로 부터 당시 선각자들이 세웠던 여러 학교에서 체육 교과목이 도입되었는데, 그 들이 강조했던 것은 나라를 패망에서 구할 전사적 역량이었고 그 결과 체육 교과목의 내용은 군사훈련과 유사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일제강점기에도 지속되었 는데, 일제의 교육은 명목상 근대 교육의 이념을 표방하고 있었으나 실질적으 로는 일제의 통치에 순응하는 유순한 신민의 양성에 그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었다.
1910년대 학교체육에 도입된 체조와 같은 집체교육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그리고 일제가 제2차 세계대전의 한복판으로 나아가면서 체육은 다시 군사훈련과 유사한 것으로 바뀌고 만다.
일제의 패망으로 광복을 이룬 후에도 이런 경향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 담당자는 바뀌었지만 1980년대까지 연이어 지속된 독재정권은 일제와 마찬가 지로 한편으로는 유순한 시민의 양성을 원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남북이 대치하는 냉전 상황 속에서 북한과 싸워 이길 전사의 양성을 도모하기도 하였 다. 군인들에게 전투 기술의 일환으로 태권도가 강요되고 학교체육에서도 수 류탄 던지기 같은 종목이 존재했던 것이 이를 보여 준다. 나아가 북한과의 경 쟁이 일차적인 요소로 강조되는 가운데 스포츠에서는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는 승리지상주의의 풍조가 발전하기도 하였다. 학생 운 동선수들은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경기에서의 승리를 위해 학업을 팽개치고 연 습에만 몰두하였으며, 국가대표선수들은 국제대회를 대비하여 연중 합숙훈련 을 하면서 운동능력을 높이는 데 힘썼다. 결과적으로 소속팀이나 우리나라의 승리를 위해 개인의 희생은 당연시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희생에는 학습 기 회의 박탈뿐 아니라 무자비한 폭력의 감수 같은 것도 포함되었다. 승리를 위해 상대적으로 자질이 떨어지는 다수의 사람으로부터 운동할 수 있는 기회를 박 탈하고 한정된 자원을 소수의 선수에게 집중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우리 체육계가 현재 보여 주고 있는 다양한 문제점을 교정하고 좀 더 바람직한 우리 체육의 미래를 설계하려면, 우리 체육의 굴절된 역사를 이해하 고 그로부터 형성된 체육의 틀을 바꾸는 것이 일차적인 과제이다. 현재 문제를 발생시킨 특정 개인을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문제의 근본적인 교정이 불가능하 다는 의미이다.
물론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이런 한국체육의 특성이 오로지 우리 체육에 만 국한된 특성은 아니라는 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근대 초기까지의 체 육은 어느 나라에서나 군사훈련의 측면을 지니고 있었으며, 20세기에 들어와 서도 구사회주의권 국가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더 가혹한 승리지상주의를 보여 주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사회주의권의 몰락 이후 극히 일부의 국가를 제외하면 그런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우 리나라의 경우 과거의 틀이 한편으로는 국제대회에서의 뛰어난 성적을 통해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는 일종의 '성공의 역설과 다 른 한편으로는 식민지 시대를 거쳐 온 우리 시민들이 대외적으로 자부심을 느낄 기획를 가지는 데 목말라하고 있다는 점 등이 맞물려 과거와 유사한 틀이 더 오래 지속되고 있는 형편이다.
결국 한국체육사를 공부하는 의미는 현재 우리 체육을 틀 지우고 있는 체제 가 어떤 배경에서 어떤 과정을 거처 형성되었으며, 거기서 파생된 문제가 여전 히 지속되게 만드는 요인들은 무엇인지 확인함으로써 좀 더 바람직한 우리 채 육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물론 역사의 변화는 한 개 인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이 역사를 배우고 이 를 통해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힘을 합한다면 현재의 우리 체육이 지닌 문제 점들이 개선된 바람직한 미래를 전망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한번 미래는 현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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