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체육사에 이어 근대 이전의 스포츠에 대해 알아볼 것 이다.
1) 군사훈련의로서의 스포츠
근대 이전의 스포츠와 유사한 신체활동은 자기목적적인 활동과는 거리가 있 었다. 즉, 그 활동 자체를 위해 참여했던 활동이라기보다는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루어진 성격이 강했다. 이 다른 목적 중 가장 일반적이었던 것은 군사훈련이었다. 사실 이는 스포츠의 기원을 생각해 본다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스포츠의 기원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이 존재하지만 많은 사람은 스포츠가 인간의 생존을 위한 활동, 즉 사냥에 기원을 두고 있을 것으로 생각 한다. "최초의 스포츠는 창던지기였다"라는 게르하르트 루카스(Gerhard Lukas)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즉, 스포츠는 농경과 가축사육의 발전으로 먹을 것을구하기 위해 했던 사냥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시대에 과거 사냥을 하던 때의 흥분을 되살리기 위해 사냥 방식을 형식화하여 되풀이한 것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주장에서 시사되듯이 스포츠가 단지 유희의 의미만을 지니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냥의 필요성은 거의 사라졌더라도 서로 다른 집단, 부 족, 국가 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싸움으로서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었기 때 문이다. 그리고 14세기 이후 총포의 발전에 따라 전투방식이 완전히 바뀌기 전 까지는 비록 무기는 좀 더 정교화되었지만 사냥 기술이 대부분 그대로 전투 기술로 활용되었다. 그 결과 과거 사냥을 위해 사용되었던 신체활동은 전투를 위한 신체활동으로 형식화되어 체계적으로 교육되고 전승되었다. 많은 나라에 서 스포츠가 군사훈련의 일환이 된 것이다.
군사훈련으로서 스포츠의 역사는 고대 이집트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집 트 왕의 무덤에 그려진 벽화에서 지금의 레슬링과 유사한 경기를 하는 모습의 그림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크레타에서는 지금의 권투와 유사한 경기를 벌였 고, 남아시아에서는 수영과 다이빙, 격투기, 중국에서는 활쏘기와 격구, 일본에 서는 승마 등이 벌어졌다. 하지만 군사훈련으로서 스포츠의 훈련을 가장 잘 보 여 주는 것은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중 한 곳이었고 강한 군사력으로 유명했 던 스파르타의 사례이다. 주변의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었고 인구의 대부분을 이루었던 피정복민의 반란 위험성에 늘 노출되어 있었던 스파르타는 허약하거 나 신체장애인 아이는 출생 즉시 산속에 버리고 남은 아이들에 대해 7세부터 30세까지 엄격한 신체훈련을 실시하였다. 18세까지는 달리기, 높이뛰기, 원반 던지기, 창던지기, 씨름 등의 무술을 연마하였으며, 18~20세까지는 좀 더 전문 적인 군사훈련으로 검술, 승마, 수렵 등이 교육되었던 것이다(이후 30세까지는 실제 현장에 배치되어 업무를 수행했다). 또한 스파르타에서는 강건한 신체를 가 져서 강건한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여성들에게도 신체수련과 체육을 하도록 했다.
군사훈련으로서 스포츠는 근대 초기까지도 지속되었다. 고대 로마에서는 달 리기와 검투, 전차경기가 거행되었으며, 중세 기사들 사이에 벌어졌던 마상 창시합이나 근대 초기까지 귀족들의 일종의 교양이었던 펜싱 등이 이를 보여 준 다. 특히 중세 기사의 교육에서는 달리기와 권투, 씨름, 승마, 수영, 활쏘기, 점 술 등의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근대에 들어와서도 스포츠를 통한 신 체의 단련은 전쟁 기술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더라도 강건한 군인의 양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강조된다. 나폴레옹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영국의 웰링턴 장 군이 워털루 전투에서의 승리는 이튼의 운동장에서 마련되었다"라고 말한 것 은, 이튼 학교가 워털루 전투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전투 기술을 가르쳤다는 의미가 아니라 스포츠가 강건한 몸과 정신, 협동심을 지닌 인재를 양성함으로 써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 주었다는 의미이다.
2) 축제 또는 제의로서의 스포츠
군사훈련 외에 스포츠는 또한 축제 또는 제의의일부가 되기도 했다. 신에 대한 제사를 명목으로 하는 축제와 제의의 실질적인 의미는 공동체의 일체성 을 강화하고 결속감을 다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 행사인 제식의 뒤에는 부수 행사로 서로 간의 결속을 다지는 놀이가 벌어지는 사례가 많다. 그리고 그런 놀이의 대부분은 스포츠의 원형적 형태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씨름, 활쏘기, 줄다리기, 돌팔매놀이, 차전놀이, 격구 등 우리 사회에 전래되는 다양한 민속 놀이도 대부분 그 기원을 제의행사에 두고 있다.
기원전 776년부터 고대 그리스에서 거행되었던 올림픽이 제의의 일환으로 서 스포츠의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 준다. 폴리스 사이의 동맹의식을 강화하려 는 목적으로 시행되었던 올림픽은 원래 최고신이었던 제우스에 대한 기념제와 감사제의 부수행사였다. 5일 동안 열렸던 올림픽은 첫째 날과 셋째 날에 제우 스 신에 대한 기념제를 거행하였으며, 마지막 날인 다섯째 날에는 시상식과 함 께 제우스 신에 대한 감사제를 진행하였다. 즉, 형식적으로 보면 올림픽은 제 우스 신에 대한 제사를 올리는 기간에 일종의 여흥으로서 운동경기를 벌인 것이라 할 수 있다.
3) 놀이로서의 스포츠
스포츠의 출발점은 군사훈련 또는 제의의 일환이었지만 그것이 반복되면서 스포츠를 놀이로 즐기는 경향이 나타났다. 강요되거나 특별한 계기가 없어도 개인적 여가활동의 일환으로 스포츠를 즐기는 사례가 늘어나게 된 것이다. 고 대 로마에서 검투와 전차경기 등이 많은 사람의 구경거리로 자리 잡았던 것이 이를 보여 주는 하나의 사례이다. 검투와 전차경기는 전투 기술과 직접 연관되 어 있는 것으로 원래 군사훈련의 일부였다. 하지만 이런 군사훈련이 그 맥락에 서 분리되어 관람을 위한 여흥거리로 바뀐 것이다. 특히 전차경기는 대원형경 기장에서 25만여 명에 이르는 관중이 참관한 거대한 구경거리였다고 한다.
중세시대의 마상창시합도 많은 관객을 끌어모았던 시합이었다. 말을 타고 돌격하여 상대를 창으로 찔러 떨어뜨리는 마상창시합은 원래 군사훈련의 일환 이었던 활동이었지만 15세기경이 되면서 군사훈련보다 구경거리로서의 의미 가 더 강해졌다. 특히 1520년 북부 프랑스에서 벌어졌던 영국의 헨리 8세와 프 랑스의 프랑수아 1세 사이의 토너먼트 경기는 국가 간 경쟁에서 스포츠가 사 용되는 것의 원형을 이루기도 했다.
중세시대에서 근대 초기에 걸쳐서는 축제의 일환으로 벌어졌던 축구경기가 평민들의 대표적인 놀이가 되었다. 엄숙한 축제보다 부수행사로서의 놀이에 관심을 더 가지는 현상이 빚어진 것이다. 엄격한 규칙이 없어 집단적 싸움과 유사했던 축구경기는 종종폭동으로까지 발전했는데, 이 때문에 영국에서는14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주기적으로 축구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이처 럼 금지령까지 내려야 했다는 사실은 축구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열광이 어느정도였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4) 근대 이전 스포츠의 특징
근대 이전의 스포츠 또는 신체활동은 오늘날의 스포츠에 비해 오히려 다양 한 종류를 지니고 있었다. 오늘날에는 전 세계적으로 공통의 규칙을 지닌 비교저 소수의 스포츠만 존재하지만, 근대 이전에는 그와 같은 통일된 규칙이 없다보니 각 지역마다 형태는 유사하더라도 규칙은 조금씩 다른 다수의 스포츠가 준하고 있었다. 또한 근데 스포츠에 밀려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된 농촌 중심 의 다양한 민속놀이도 존재했다.
근데 이전 스포츠가 지녔던 또 하나의 특징은 신분에 따라 즐기는 스포츠에 차이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군사훈련으로서의 스포츠는 군대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일부 신분, 즉 그리스 시대의 시민이나 중세시대의 기사들만 참여할 수 있는 스포츠였고, 다수의 일반 민증은 기껏해야 그들이 벌이는 경기 에 관객으로만 참여할 수 있을 뿐이었다. 반면, 평민들은 축제의 일환으로 벌 어지는 다수의 민속 경기에 참여했다.
물론 오늘날에도 계층에 따라 즐기는 스포츠에 차이가 존재한다. 이른바 고 급 스포츠로 불리는 스포츠와 대중 스포츠가 구분되는 것이다. 프랑스의 사회 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lerre Bourdieu)는 고급 스포츠의 특징으로 사적 클럽과 같은 전용장소가 있고, 자신이 선택한 시간에 혼자 혹은 선택된 파트너와 함께 하며, 그 스포츠에 소모되는 체력이 비교적 적고 소모량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지만, 그 특수한 기법을 습득하려면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야 한다는 점을 꼽는다. 그가 꼽는 고급 스포츠의 사례에는 골프, 테니스, 요 트, 승마, 스키. 펜싱 같은 스포츠가 포함된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경제력의 차 이가 운동을 즐기는 것을 방해할 뿐 애초부터 특정 스포츠의 향유를 가로막는 장벽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근대 이전의 스포츠와 차이가 있다.
'운동 및 스포츠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쟁으로서의 스포츠 (1) | 2023.06.07 |
---|---|
근대 스포츠의 성립 (5) | 2023.06.06 |
한국체육사의 역사 (7) | 2023.06.02 |
운동학습 연습기법 중 가이던스 기법 (0) | 2023.05.31 |
스포츠심리학 (1) | 2023.05.31 |